문학

세월 – 1. 나의 가장 젊은 날

아파트 옆, 천변 산책을 나선다. 저녁 식사 후, 아내와 함께하는 근간 새로 생긴 일과다. 여름의 열기가 바뀌어 제법 산뜻한 가을 향기를 싣고 오고 있다. 상쾌해진 날씨 때문인지, 걷기 운동하는 많은 이들이 더욱 신나게 팔을 휘저으며 지나간다. 물 위에 동동 떠다니는 철새들도 오늘따라 여유 있어 보이니, 모처럼 기분이 밝아진다. 가을 냄새가 더없이 싱그럽다.

유난히 무덥던 올해 여름도 저렇게 막상 떠나게 되니, 역驛을 빠져나가 산모퉁이를 돌아가는 옛 고향 마을의 완행열차의 뒷모습처럼 아련한 아쉬움을 남겨준다. 세월에 대한 미련 같은 것인가. 새삼 계절의 감각이 짙게 느껴지니 세월부대인(歲月不待人)이란 말이 얼핏 스쳐 지나갔다. 시간은 저 천川의 물처럼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다.

며칠 전, 정수기 방문 수리원이 와서 하는 말이었다. ‘이 댁은 약만 먹고사시는가 봐요.’ 식탁 위에 놓인 많은 약봉지들에 놀란 모양이었다. 실소를 했다. 고혈압, 당뇨 약은 기본이다. 두통에 소화제, 변비약 에다 영양제 등등이며 모양도 봉지 약에서 병(甁)에 든 것, 바르는 약에서 뿌리는 것, 심지어 오래되어 용도를 알 수 없는 것까지 식탁 한쪽이 즐비했기 때문이었다.

나이가 들면 몸이 고장 나고 병원 출입이 잦아지게 된다. 삶의 굴레인 생로병사의 한 과정이니 어쩔 수 없이 부딪히는 운명이기도 하다. 사람도 기계나 마찬가지로 어쩔 수 없이 내용 기한이 있게 마련 아닌가. 노후화로 인한 고장이니 정비 공장인 병원이나 약국 신세를 지지 않을 수 없다.

젊은 시절의 아내는 더없이 건강했다. 애들의 운동회 날이면 곧잘 학부모 달리기 선수로 자원 출전을 했고, 한라산, 지리산 등반도 거뜬히 해냈다. 학교에서는 극성 엄마로, 집에서는 알뜰한 살림꾼이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지금은 여러 통증에 시달리면서 투병이 매일의 일과가 되어 버렸으니 때로는 세월 탓인가 하여 원망스럽기도 했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아내는 쉬어가자며 길섶 벤치에 앉는다. 무심코 한마디를 한다. ‘아이들한테 알맹이는 모두 다 빼주고 이젠 껍데기만 남았다.’ 지친 삶의 넋두리다. 가슴이 찡해온다. 그 말속에는 아이들뿐만이 아니고 아마도 어설픈 이 남편에 대한 원망도 끼어있으리라. 여운을 남기고 귀속을 맴돈다.

떠나가신 장인, 장모님의 생각이 난다. 첫선 자리였다. 흰머리에 깨끗한 전형적인 품위 있는 시골 노인이셨다. 미소를 띤 장모는 연신 귓속말을 장인에게 하시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겨우 십여 년을 지나 여든셋의 연세로 장모님은 돌아가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인은 홀로 쓸쓸히 지나시다 곧 뒤따라가시고 말았다.

그때는 호상好喪이라고 했으나, 세월이 가면서 점차 마음에 켕기는 일로 남게 되었다. 두 분께 멋진 효행 한번 해 드리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이었다. 당시의 주머니 사정 때문이었다고 억지의 변명을 해 보지만 오히려 빈곤한 마음의 탓이었다. 주자朱子의 말씀대로 두고두고 사후회死後悔의 젖은 감정은 잊힐 수가 없었다.

두 분은 매우 정분이 두터우셨다. 깐깐하신 장인의 성품을 잘 알아 매사에 거슬리는 일이 없도록 하시고 특히 깨끗하게 나들이옷 가름을 청결하게 하실 뿐 아니라 옛 여필종부의 본보기라도 보여주시는 듯, 장인어른께는 어느 한 틈 흩어진 모습을 보이신 적이 없어 보였다.

장모님 돌아가실 때였다. 임종을 하신 장모님의 가슴에 장인께서는 손을 대고 체온을 확인을 하면서 한동안 염을 못 하게 하셨다. 혹시나 회생하는 것을 기대하시는 듯, 장모님의 가슴을 되짚어보시곤 하는 모습에서 짙은 그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자식들에 대한 아내의 허전한 마음이 새삼 느껴진다. 지난날들의 세월의 덧없음으로 새삼 다가왔다. 아마도 장모도 그러하셨으리라. 겁劫을 이어가는 삶이라고 했다. 그 속에 윤회의 법칙이 있으며, 우리의 찰나의 삶들이 그 속에 점철되고 있다. 대 우주의 엄숙한 순리인지도 모른다.

산책을 나서면 아내의 손을 잡는다. 지난날 그렇게 해 본 적이 없다. 겨우 이제 체력이 고갈 나, 걷기에 힘이 부친 아내를 부축하는 짓일뿐이다. 그런들 어떠랴. 아내의 체온이 따스하게 전해온다. 지난날 가져보지 못한 느낌이었고, 지금까지 제대로 해주지 못한 후회의 생각을 짙게 가져다준다.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보던 그 꽃,’ 어느 시인이 노래했다. 어차피 삶은 내려오게 마련이다. 그러면서 오늘처럼 못 보던 그 꽃을 보게 되는 것인지 모른다. 어느덧 지나온 먼 삶의 여정과 앞이 내다보이는 듯하다.

벤치에서 일어나 다시 걷기를 시작한다. ‘휴가를 내어서라도 멀리 살고 있는 아들네에게 한번 가보자.’고 아내는 쥔 손에 약간의 힘을 주면서 말한다. 어쩌면 이번에는 아내의 그 말을 꼭 들어주어야만 할 것 같다.

천변의 연보랏빛 쑥부쟁이가 더욱 산뜻하게 간들거린다. 어김없이 계절은 또다시 이렇게 바뀌어 가고 있다.

1943년 9월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다. 1965년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화공과를 졸업하였으며 1967년 군제대 후 울산 한국비료공업주식회사에 입사하여 울산에 둥지를 틀었다. 그 뒤 동서석유화학(주)과 가원산업(주)으로 회사를 옮겨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1988년 직장생활을 청산하였다.
이후 화공약품 제조, 도소매업인 영남화공약품(주)을 시작으로 자영업에 발을 들여놓았고, 폐기물 처리업체인 (주)삼우이엔텍을 인수, 운영하다가 정리하였다.
1995년 7월 다시 건축자재 제조 및 건설업체인 한국하트랜드(주)와 (주)우주를 설립,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2013년 계간 <<동리목월>>에 수필 [일장 일막]으로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하였고, 2012년 JTI문학상, 2013년 등대문학상, 2013 2014년 대구일보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2회), 2015 2017년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상(2회) 등을 수상하였다.
현재 울산문인협회, 울산수필동인회, 울산남구문학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E-mail : domy1@hanmail.net

도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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